'분류 전체보기'에 해당되는 글 158건

  1. 입장정리 1 2021.06.06
  2. 상관없는 거 아닌가? 2021.04.11
  3. 또 한번의 강원도 여행 2021.03.30
  4. 욕망에 충실하라 2021.03.02
  5. 여행 회고 2020.08.27
  6. 귀한 시간 2020.04.14
  7. 내 것이 아니다 2019.06.19
  8. 유발 하라리 3부작 열독 중 2019.05.26
  9. 침전 2019.04.25
  10. 글쓰는 공간 1 2019.02.06

입장정리

from 카테고리 없음 2021. 6. 6. 08:25

1.

올해 업무의 종류를 바꾸게 된 후, 태세를 전환하면서 스스로 압박을 받게 되는 것이 하나 있다.

그건, 나의 '입장'이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알려진 사실에 대해서 미리 생각을 해보고 '그렇다면 나의 판단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봐야 하며,

갑자기 주어신 사실에 대해서 '뭐 처음 들은 이야기이지만 이렇게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요?' 라는 스텝을 자연스럽게 밟아야 한다.

 

사실 지금까지는 그런게 꼭 필요하지는 않았다. 

내 입장이라는 건 의사결정의 중심에 있다기보다 '조언', '첨언'이어도 괜찮은 범주에 속하였기 때문이다.

'주어진 일을 완성도 있게 해내는 것', 그것이 내가 할 일이었다.

 

지금의 할일은 '무엇을 주어지게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사실 이건 인생의 경로에서 불가피하다. 

어느 정도 주인되게 살 것인가,

내가 속한 공동체에서 어느 정도 깊숙히 관여할 것인가,

또는 어디까지 의지하고 어디부터 의지하도록 할 것인가.

 

그래서 내 입장이 무엇인지 정해야 하는데,

내가 타고나기를 특별한 취향이 없는 성격이라,

원래 취향은 별로 없지만 그래도 입장은 있어야한다는 임의적인 혹은 의도적인 상황 설정이 썩 자연스럽지가 않다.

 

2.

어쨌든 입장을 가진다는 것은 주장을 하는 것이고, 여기에는 찬성과 반대가 따른다.

주장은 할 수 있지만 반론에 대한 반론은 또다른 문제다.

생각해보니 이런 부분에 대한 솔루션이 없진 않다.

좋은 정책은 세 번의 꼬리를 무는 질문에 대답할 수 있어야한다고 했다.

그래서 나의 입장은 세 번의 꼬리를 무는 질문에 대답하는 depth로 준비한다.

내 성격이 그렇듯, 입장은 언제나 바꿀 수 있다.

 

3.

한발 더 나아가서 '입장을 가져야하는 영역'에서의 비공식적인 업무 분담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원래 했던 일은 스킬셋으로 분담하는 구조가 자연스럽게 짜였다.

글로 적을 수도 있고, 조직도로 구분하기도 쉽다.

 

지금 하는 일에 대해선, 글로 적고 조직도에 명시하는게 가능한 부분이 있지만,

글과 조직도로 드러나지 않는 업무 분담에 대한 '나의 입장'이 중요하고,

그 입장에 대한 다른 사람들과의 '동기화' 혹은 '적합도'가 필요하다.

 

4.

그런데, 그런데,

이러한 관계도와 상대성으로 결정지어지는 위치를 벗어날 땐 어떤 생각을 해야할까.

어느 밤 뾰족한 화두없이 납작하고 평평한 내 상태가 보였을 때, 조금은 흠칫했고, 당황했다.

막연히, 자식 낳고 30년이 흐른 지점에서 세상 모든 엄마들이 겪는 그런 당황스러움과 1%는 닮지 않았을까 상상이 들기도.

 

마감까지 남은 1주일을 계획세우다 잠깐 멈춰서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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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관없는 거 아닌가?

from 이야기 2021. 4. 11. 08:12

올해 처음으로 완독한 책.

데이터니, 인공지능이니, 트렌드니, 비즈니스니... 기웃기웃거리던 주제들이 꽤나 피곤했던 것 같다.

짧은 여유가 주어지고 책을 집을 기회가 생기니, 새로운 돌격을 앞두면서도 막상 읽게 된 것은 편안한 산문이었다.

 

장기하는 오래 전부터 좋아하던 가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런저런 면에서 거리가 가깝다고 느꼈다.

그래서 한 번 읽어보고 싶었다.

더군다나, 예전에는 하루키같이 소위 저명한 사람의 글을 더 읽고 싶었는데,

이번엔 왠지 나이가 가까운 사람의 생각이 듣고 싶었다.

 

아무튼, 재밌게 잘 읽었다.

그는 '군더더기 없는 삶'을 지향한다. 대목마다 그런 맥락이 느껴진다.

그리고 불필요한 부분들을 제거한 여백은, 집중하고자 하는 몇가지 포인트를 깊고 넓게 파고들어 다시 채워낸다.

 

어찌되었건, 내가 가깝다고 느끼건 막연히 좋아하는 인물이건, 이건 그의 삶이다.

나는 어떤 삶을 지향하는가?

 

돌이켜보면, '나답다'고 느끼는 순간들이 아주 간혹 있다.

내가 있어야 할 포지션이 동전처럼 둥글게 그려진 곳에,

같은 크기의 내 생각과 상황의 동그라미가, 그 동그라미 위에 얼추 포개지는듯한 느낌의 그 순간이 간혹 있다.

딱 뭐라고 정의하긴 어렵겠지만...

부유하기보단 침전하듯이, 남을 쳐다보기보단 내가 만들고, 행동과 사색의 비율이 적절한 그런 상태

 

시계추가 같은 시간 간격으로 왔다갔다 하며 중앙을 스치듯

적어도 그 정도 템포로 포개짐과 떠남을 경험할 수 있는 일상이라면,

꽤 나쁘지 않을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어떤 삶을 지향하는가?

근데 뭐, 장기하님 방식으로는, 어떤 삶을 지향하든 상관없는 거 아닌가?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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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번의 강원도 여행

from My family 2021. 3. 30. 08:25

여행 중 잠깐 짬을 내어 휘리릭 메모를 남겨본다.

 

우리 가족의 최애 여행지, 속초-고성-양양.

몇 번을 와도 질리기는 커녕 더 좋아질 뿐이다.

심지어 늘 방문하는 몇 곳의 지점들이 반복됨에도불구하고 말이다.

 

이번 여행은 또 한번의 이동을 계기로, 각 양가 가족과의 일정을 모두 포함하여 진행됐다.

우리 아이들이 서로 비슷한 환경의, 또 서로 다른 분위기의 문화를, 다채롭고 투명하게 지낼 수 있는 이 시간들이 이 아이들에게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번 직장의 이동을 결정했던 것은 과거 미숙했던 시절의 판단에서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진행됐다.

이번에 이동을 결심한 것은 또 조금 결이 다르다.

글을 쓰는 지금에서야 드는 생각이지만, 약간의 위험을 감수하는 굵직한 결정을 한 번 내려야하는 '나이'가 되었다- 는 생각이 든다.

아마 5년 정도 뒤(혹은 내)에 진지한 결정을 내리게 될 것이다. 결정이란 '변동없음', '이대로 쭉' 또한 포괄하는 범위이다.

 

앞으로 뭐가 됐든, 즐거운 '시도'와 '과정' 되었으면 한다.

'도전'이라는 단어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도전에는 항상 '실패'라는 대칭어가 따라 붙는다.

시도에는 '오류'가 짝으로 따라온다 (Trial & Error).

오류는 수정할 수 있다. 실패는 회복해야 한다.

(뭐 실재하는 경험에서 뭐가 차이가 있을까 싶지만, 모든 것은 기분이기에 편안한 말을 쓰면 그만이다 ㅎㅎ)

 

지금의 나이가 되니 이제야 '과정'의 소중함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모든 것은 과정이 알차야만 한다. 속이 꽉 찬 대게 다리살 같아야 한다.

 

아무튼, 급 마무리

 

나의 시도, 가족의 시도, 모든 시도, 그리고 그 과정의 즐거움 모두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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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에 충실하라

from 이야기 2021. 3. 2. 11:20

요즘 달리기를 꾸준히 하다보니 제법 호흡이 가벼워졌고, 이제는 걸음을 걸을 때처럼 뛰면서도 여러가지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다 문득 최진석 교수의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라'는 문장이 떠올랐다.

예전에 책을 읽고 글을 읽을 때 막연히 끄덕끄덕했는데, 무슨 의미인지 조금 알 것 같았다.

 

나는 당연히 지금까지 내 욕심에 제법 따르며 살아왔다. 하지만 진정으로 '충실했나'라고 묻는다면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유교사상이 뿌리깊이 내린 우리 사회에서는, 내 욕망에 진입하기 전 하나의 단계를 거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욕망은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인가?'

 

내가 가진 욕망의 범위 중 칭찬받을 수 있고, 다른 사람이 긍정할 수 있고, 결국 허락받을 수 있는 범위로 가지치기를 하게 된다.

그러다보니, '나는 이게 그냥 하고 싶다구요!'가 아니라, 이것의 성취를 통해 사회에 '기여'할 수 있고, 가정에 '보탬'이 될 수 있다는 식의 미괄식 주장이 어디에나 붙게 된다.

 

그것을 '갖고 싶다, 되고 싶다, 하고 싶다'는 것이 커다란 이상을 추구해야할 것 같은 사회 분위기와 엇박자가 날까봐 몸을 사리게 된다.

그저 순수한 동기이며 불법적인 의도나 결과가 아닌데 그 어떤것이든 어떠랴.

 

넌 너무 속물이야, 소인배야, 꿈이 작구나, 네가 그걸 굳이 왜? 라는 상상 속의 잔소리에서 해방되자.

 

... 그러면서도 이런 생각을 남기러 이 동굴로 굳이 들어온 나도 참 ㅎㅎ 왜 공공의 담벼락에는 쓰지 못하나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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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회고

from 이야기 2020. 8. 27. 01:23

9일 간의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다.

결혼하고 같이 여행을 다니면서, 우리가 취향이 일관되다는 것과 함께 비슷하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여유, 한적함, 편안한 자연. 도심스러운 교외 공간. 샌프란에서 소살리토를 좋아했듯, 제주도는 역시 (우리에겐) 서귀포다.

좋은 날씨에 두 명의 어린 아이를 데리고 충분히 즐기고 왔다.

 

세상이 너무 빠르게 변한다. 

나름 선두에 있는 산업에 종사하다보니 직간접적으로 듣기도 하고, 찾아보기도 하고, 뭐 어떤 경로든 빠른 변화들을 알게 된다.

따라가야 할지 불안하기도 하고, 허덕거리기도 하고, 기웃거리기도 하고, 고개를 돌리기도 한다.

 

이따금씩 여행을 가면 현실에서 몇 발자국 떨어지게 된다. 소위 '현타'를 겪는다. 재작년의 속초, 작년의 캠핑, 올해의 제주도.

잠들 무렵이 되면 어김없이 또 고민한다. 업무를 들고 있는 집에서보다 더 많이 생각하게 된다.

내가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내 손에 쥔 것은 소중한가?(당연히..) 쥐고 있는 것으로 무엇을 해볼 수 있을까? 롱런할 수 있는가? 고유하게 다듬어질 수 있는가?

 

외부의 목소리와 단절되어 고유하게 나만의 것을 보존할 수 있기를 기대하며 그런 소재들을 찾아보지만, 그런게 잘 드러날리 없다.

그러다가 뜬금없는 친구와의 카톡에, 내가 진정으로 바란다고 착각하는 것은 어차피 외부의 '니즈'로부터 드러나게 된다는 점을 다시금 깨닫는다.

 

마지막(먼 미래가 아닌 가까운 미래에도 얼른 달성하고 싶은) 그림은 있다.

그것은 시간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최소한의 경제적 자유를 얻어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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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한 시간

from 이야기 2020. 4. 14. 23:37

네 가족이 되고 나니 생각했던대로 바쁘다. 오늘은 10시에 모든 가족을 재우고 혼자가 되었다. 갑자기 찾아온 여유에 허둥지둥하며 뭘할까 생각하다가, 수많은 리스트 중 갑자기 여기 공간이 생각났다.

 

특히나 재택근무를 하는 상황에서 갓 네 명이 된 가정의 아빠로 사는 것에는 장점과 단점이 있는데,

 

장점은 - 소소한 집안 일들과 육아에 참여가 가능하다. 집에 있으니 일을 하다가도 아기 기저귀를 갈아준다거나, 잠깐 나가서 쓰레기를 버린다거나, 첫째 데리고 점심시간을 이용해 외출을 한다거나. 와이프 입장에서는 이런 손 거들기가 적지 않은 역할일 것이다.

 

단점은 - 내가 가진 모든 시간이 공동체 생활을 위한 시간으로 이용된다는 것이다. 아침 10시부터는 회사공동체를 위해, 오후 7시부터는 가족공동체를 위해, 그리고 다음날 아침 10시부터는 다시 회사공동체를 위해. 바위 틈 같은 1시간 가량의 출퇴근 시간까지 모두 공동체를 위해 바친다. 뭐 사실 그러다가도 오늘 같은 밤이 있고 그렇다.

 

아무튼 투두리스트 메모지 없이 이런 시간을 마주하면 온갖게 떠오르는데, 책읽기(종이책)-책읽기(리디북스)-영화보기-글쓰기(육아)-글쓰기(전문분야)-블로그글읽기-못들은수업듣기-온라인강좌아이쇼핑하기-계획세워보기-등등을 스쳐지나가고 결국 스마트폰 두어시간 하다가 잠든다.

 

오늘은 그나마 생산적인 시간을 보내는 듯. (근데 떠오르는걸 써놓고 보니 참 재미없다 나도 ㅋ)

 

이왕 쓴 김에 정말 두서없이 생각했던 몇 가지를 써보자. 각각의 문장은 어디 다른 공간에서 한 편의 글이 될수도 아닐수도 있다. 정말 막 뱉어보는, 퇴고 없는 생각이다.

 

1. 나이를 한 살 더 먹고 나니, 금전적인 자산과 비금전적인 자산 모두가 중요하고 의미있다는 점을 더 깨닫게 되었다. 생각하는 관심사, 주변의 관계, 가족의 행복, 자유의지로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이 자산이다. 인생의 자산 총량이 더 크게 느껴진다. 이제 알게 되었는데, 앞으로 이게 체화될 수 있도록 생각과 상황이 변하지 않으면 좋겠다. 그리고 내 자식들은 이것의 의미를 나보다 더 빨리 알면 좋겠다.

 

2. 주식을 시작한지 6개월 정도 되니 이제야 앱 안열고 까먹는 날이 생긴다. 그리고 차트분석보다는 역시 가치투자가 옳다(적어도 나에게는). 

 

3. 어떤 보상도 기대하지 않고 그저 재밌어서 했던 수많은 일들, 그 때의 초심을 유지하는 것은 어렵다. 왜냐면 어떤 보상을 얻어본 적이 있고, 어떤 보상을 얻게 되는지 곁에서 바깥에서 간접 경험이 가능하기에, 어떤 보상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새로운 시도를 하기도 하고 재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무언가를 꾸준히 한다는 것이 참 어렵다. 상념들을 배제하고 초심에 집중해야하기 때문이다. 혹은 주어지는 보상보다 그 자체가 더 즐거울 때 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4. 작은 기업을 벗어나 대기업을 다닌지 3년을 넘겼다. 3년 간 서로 다른 세 개의 기업에 다녔는데, 돌이켜보면 이제야 체화되어 변화된 여러가지 것들이 있다.

 

첫째, 분석의 프레임으로 '공간적 기준'을 벗겨내는데 2년이 넘게 걸린듯 하다. 첫 회사를 떠나 새로운 회사에서 새로운 도메인에 대해 새로운 분석주제를 들고도 꽤 오랫동안 '위치정보'부터 생각하는 습관을 버리지 못했는데, 이제야 그렇지 않음을 느낀다. 다른 많은 것들을 '기준'으로 세워가며 사고할 수 있게 되었다.

 

둘째, 여럿이서 일할 때 낼 수 있는 성과를 체험하고 있다. 데이터 분석은 생각보다 여럿이서 하기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깊이 있는 과제는 여럿이 해야 할 수 있다. 다뤄야할 범위가 넓어도 그렇다. 내 손과 내 머리 범위를 벗어나서 협력하여 일하는 방법을 이제야 익히고 있다. 이는 커다란 시스템을 운영하면서 동시에 기민한 결과를 낼 수 있는 기동력 간의 참으로 좁은 교집합을 찾아내는 능력의 배양을 의미하기도 한다. 작은 성과를 빠르게 내는 것은 실력있는 누구나 가능할지 모른다. 하지만 서로서로 물려있는 시스템 간 상호작용을 이해하고 같이 움직이면서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은 그 다음 전문성 레이어에 필요한 것이다.

 

셋째, 커리어 초반의 기쁨은 되찾을 수 없겠지만, 현재의 부담감과 지루함과 새로운 성취감도 당연함을 받아들인다. (너무 많은 것들을 깎아내리고 일반화한 비유임을 인정하고) 내가 스타트업에서 경험한 기쁨은 햇살 가득한 좁은 운동장에서의 동네축구와 같다고 느낀다. 얼마나 재미있었겠는가? 현재는 프로축구단에서 정식으로 축구를 한다. 지켜야할 복잡한 룰, 수많은 동료와의 관계, 반복되는 경기. 어릴 적 동네축구의 기쁨은 없다. 하지만 프로의 세계가 주는 또다른 기쁨이 있다면, '축구하는 맛을 느끼게 하는' 프로들의 존재다. 성인이 되어서 어릴적 그 기분을 다시 느낄 수 없듯이, 레알 마드리드에서 뛰는 선수들이 느끼는 희열을 대체할 수 있는 다른 경험은 없다. 뒤로가기 없이 더 나은 프로의 세계, 리그, 구단으로의 전진을 꿈꿀 뿐이다.

 

5. 기생충 감독 봉준호는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는 글귀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한다. 다른 모든 개인에게도 통용되는 이야기임을 새삼 느낀다. 소셜이 발달하고 나서 모든 개인의 성과를 보편적인 것처럼 받아들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그러다보니 내가 처한 이 환경이 아이러니하게도 보편적인 상황과 멀어져보이는 이상한 효과가 생긴다. 그래서 내가 겪는 문제를 약간 뒤에 두고, 더 보편적인 문제에 대해 해결책을 찾고 방법을 갖추는 식으로 무언가를 좇는 것이 나아보인다는 생각이 들게 마련이다. ... 하지만 이와 반대로 생각하는 것이 '옳다'라는 생각을 다시 하는 요즘이다.

 

6. 나는 무엇을 좇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이름과 외연도 중요하고, 누가 뭐라든 나 스스로 충만함도 중요하다. 어느 쪽이 내게 더 큰 보상을 줄까? 아니면 무엇을 얻었을 때 나는 보상이라고 느끼나? 그저 솔직하지 못한 측면도 많겠지 ㅎㅎ

 

7. 더 생각나는 것은 없는데, 다음에 또 쏟아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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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것이 아니다

from 이야기 2019. 6. 19. 00:22

내 것이 아닌 것들에 대한 집착이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질 수도 있었지만 놓아버린 것, 가졌지만 멈춘 것, 갖고 싶지만 언저리에 있고 시도하지 않은 것들.

얼마나 가까웠냐는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내 것이 아니라는 인식이 중요하다.

내 것에 집중하자. 내가 가진 것과 갖고자 하는 하나 혹은 둘, 그것에 집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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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사피엔스 - 호모데우스까지 2년에 걸쳐 읽었다. 꾸준히 읽은 건 아니고, 띄엄띄엄 읽다가 몰아서 읽다가... 아무튼 이 책에서 차갑게 묘사하는 '디스토피아'는 꽤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우리는 트렌드를 어느 정도 느끼고 있고 알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정말로 '큰 시각'에서 어떻게 흘러가는지는 알기 어렵다. 알만한 능력도, 시간도 없다. 그런 나에게, 내가 서있는 컨텍스트를 완전히 벗어나서 곰곰히 바라보게 해주는 책이었다. 이와 같은 '빅히스토리' 류의 책들이 대게 그러하지 않을까 싶다.

 

내 생각엔, 십 년만 지나서 보더라도 유발 하라리는 마르크스 반열에 오를 것 같다. 사실 난 마르크스를 잘 모른다. 한 세기의 방향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사상가이자 역사가라는 점만 안다. 

 

마르크스가 사회주의를 역설하는 배경과 요지는 이러하다. "노동자와 대중은 산업사회에 가장 큰 자산, 기술, 규모를 갖고 있지만 경제적, 정치적으로 그에 상응하는 대접받지 못하고 있다. 연대하고 투쟁하여 권리를 정상화하자."

 

이제 유발 하라리는 AI 등장은 완전히 판도를 바꿀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다가올 시대의 가장 큰 위협은 '무관성'이라고 주장한다. 무관성이란, '관련없음'을 뜻한다. 산업사회에서 생산력의 중추적인 역할을 노동자가 맡았기에, 이들은 교육받아야했고 건강해야했다. 하지만 AI는 이 역할을 대체할 것이다. 대다수의 인간은 생산, 경제성장, 변화의 흐름에 '무관'한 잉여 존재가 될 것이다.

 

최근 SK는 격주로 주4일 근무를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노동자의 행복을 위해서일까? 물론 맞다. 충분한 휴식과 가족과의 보장된 시간이 높은 업무생산성을 담보할 수 있는 시대이기도 하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동시에 보도자료를 접했을 땐, 고용한 사람들이 5일 만큼 일하지 않아도 사업에 지장이 없는 시대로 흘러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수익과 성장에 지대한 타격이 올 수 있는 고용환경을 무리해서 조성할 사장님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좀 더 정리된 생각과 느낌은 세 번째 책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조언'을 읽고 또 남겨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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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전

from 삶의 축 2019. 4. 25. 23:35

1주일 간 시험공부를 하느라 혼자의 시간을 좀 보냈다. 물론 가족의 든든하고 묵묵한 지원 속에.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을 비교적 좋아하는 편이다. 무언가에 장시간 몰입하면, 긍정적인 의미로 '침전'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뭐, 평균에 비하면 그다지 바쁘게 쫓기는 것도 아닌데... 원체 혼자 이런저런 시덥잖은 생각을 많이 하면서 시간을 보내다보니, 평소에는 흔들어 놓은 오렌지 주스 캔 비슷한 느낌이다. 겉으로 보면 아무도 모르겠지만 알갱이가 정신없이 부유하고 있는... 그러다 시간을 좀 가지면 차분히 가라앉는 느낌. 정기적인 '침전'의 순간들이 난 좋다.

 

이런 기간에는 어쩌다 좋아하게 된 노래를 무한히 반복해서 듣는다. 아마 각 노래 들은 횟수를 다시 셀 수 있다면 300~500번 쯤 같은 노래를 반복해서 들었을 것이다. 요즘 즐겨듣게 된 밴드는 잔나비다. 우연히 'see your eyes' 를 들었는데, 꽂혀서 계속 들었다. 재작년 즈음엔 신해철 '단 하나의 약속', 노이즈 '너에게 원한 건' 리메이크 버전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노래 어딘가에 특정 음에 꽂히면 계속 듣는다.

 

나에게 음악은 언제나 닿을 수 없는 고향 같다. 고작 아마추어 고등학생/대학생 밴드랑 짧은 군악대 생활이 전부인데,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름다움'을 좇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무언가 감정이 연결되는 듯한 밴드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그들은 여전히 그 아름다움에 포근히 갖혀 사는 것만 같다.

 

나이를 조금 더 먹으면서, 현재의 나는, 내가 아름다움을 느끼는 어떤 순간들을 알고 있다. 가족과의 어떤 순간, 또 공부하면서 또 일하면서 그 어떤 순간들이 있다. 그 순간에는, 과거에 거쳤던 어떤 순간과는 다른 색상과 형태이지만 그 '느낌'은 매우 비슷하게 다가올 때가 있다.

 

그 때 좇던 아름다움과 지금 내가 쥘 수 있는 아름다움은 서로 대체가 불가능하고 고유하다. 다만 닿을 수 없다는 것이 다시 가져보고 싶다는 마음을 들게끔 할 때가 있긴 하다. 같은 장소로 돌아가 같은 퍼포먼스를 하더라도 다시는 가질 수 없음에도 말이다. 이렇게 '침전' 상태에선 가끔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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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공간

from 이야기 2019. 2. 6. 07:59

글로 생각을 남기고자 하는 의도와 욕심은 늘 있는데, 실천이 잘 되지 않는다. 어느덧 티스토리에 두 개, 브런치에 두 개의 공간을 열어놓고 글을 남겨야지~ 남겨야지~ 하는 계획만 상상한다.

글쓰기에는 두 개의 상반된 마음이 늘 충돌한다. 보여지고 싶은 마음과 보여지기 싫은 마음.. 이 둘을 하나로 합하면 '내 생각을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이지만, 내가 원하는 만큼만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 뭐 그런것이다.

브런치는 이런 충돌이 훨씬 큰 공간이다. 글을 시작하면서부터, 아니 시작하기도 전부턴 머리는 진지하게 퇴고를 시작하고 있다. 반대로 티스토리는 이런 충돌에서 자유롭다. 누가 글을 읽든, 내가 뭐라 적든, 누가 상관할까? 나조차도 가끔 까먹는 이 곳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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