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본의 아니게 파이트 클럽을 다시 한번 보게 되었다. 정확히 2005년 1월 한겨울에 홍대 골방에 쳐박혀서 본 이후 두번째다. 그 땐 바닐라 스카이와 더불어서 인생태도에 대한 바이블이었는데, 지금은 어떤지 잘 모르겠다. 그 때보다 감흥이 덜한 것은 당연하다.
파이트 클럽뿐 만이 아니라, 우리 인생을 독려하는 대부분의 글과 영화는 마약과 같은 것을 잠시 투여해서 짧은 시간 지속하는 데 그 기능이 있다(고 지금까지 생각한다). 대표적으로 파울로 코엘류 소설이 그런건데, 대개 인생은 한번뿐이라는 위태위태한 사실로 독자를 자꾸만 부추긴다. 예를 들면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가 대표적이다. 뻔하고 흔한 반전이지만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새벽까지 글을 달린 사람에게 담배한대를 물려주는 정도의 힘은 있다. 이처럼 직접적으로 부추기는 것이 아니라해도, 대부분의 영화와 드라마는 극적인 상황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조금은 현실에서 부유하게끔 만든다. 막나가면 '내 청춘을 후회하게 될거야' 라는 모토 아래 한없이 부유해버릴 수도 있다.
파이트 클럽이 말하는 것이 "내일 죽을 것처럼 살아라" 라고 한다면, 그 직후에(불과 며칠뒤에) 본 바닐라 스카이는 "그래도 오늘을 살아라"로 요약할 수 있겠다. 마지막 장면에서 탐크루즈(오픈 유어 아이즈보다 리메이크가 더 낫더라)가 옥상에서 뛰어내리는 장면은 파이트클럽과 마찬가지로 현실의 고통을 직면하자는 것이지만 그 태도는 굉장히 담담하다. 뭐랄까, '열정으로 뚫고 나가자'라기 보다는 감내하고 거쳐내야할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파이트클럽이 나를 조금 붕 뜨게 했던 것들에 대한 고민, 뭐 비슷하게 예를 들자면 여행이 주는 마취효과 비슷한 것이 언젠가는 약발이 떨어지는데, 그 후폭풍을 감당하는 것은 물론이고 어떻게 하면 다시 붕 뜰 수 있을까를 고민했던 것에 대해서 바닐라 스카이는 부처처럼 받아치는 꼴이 되고 말았다. (걍 원래 그렇고 그런거다, 살아라!) 황석영의 바리데기는 그런면에서 조금 상통하는 것 같다. 탐크루즈가 환생하는데 그 결과가 애처롭게도 바리데기 주인공으로 연결되어도 뭐 말은 될 것 같다.
시간이 지나고 고무줄을 잡아당겼다 놓은 것처럼 다시 돌아왔지만, 그래서 하나도 성장하지 못한것 같아서 안타깝다만, 어쨌거나 이제는 에드워드 노튼처럼 광기있는 열정을 믿기는 힘든 것 같다. 그 대신, 커다란 지도를 그려내고 탐험의 종착지까지 산재한 정글을 거쳐낼 용기와 열정을 기대할 뿐이다.
파이트 클럽뿐 만이 아니라, 우리 인생을 독려하는 대부분의 글과 영화는 마약과 같은 것을 잠시 투여해서 짧은 시간 지속하는 데 그 기능이 있다(고 지금까지 생각한다). 대표적으로 파울로 코엘류 소설이 그런건데, 대개 인생은 한번뿐이라는 위태위태한 사실로 독자를 자꾸만 부추긴다. 예를 들면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가 대표적이다. 뻔하고 흔한 반전이지만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새벽까지 글을 달린 사람에게 담배한대를 물려주는 정도의 힘은 있다. 이처럼 직접적으로 부추기는 것이 아니라해도, 대부분의 영화와 드라마는 극적인 상황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조금은 현실에서 부유하게끔 만든다. 막나가면 '내 청춘을 후회하게 될거야' 라는 모토 아래 한없이 부유해버릴 수도 있다.
파이트 클럽이 말하는 것이 "내일 죽을 것처럼 살아라" 라고 한다면, 그 직후에(불과 며칠뒤에) 본 바닐라 스카이는 "그래도 오늘을 살아라"로 요약할 수 있겠다. 마지막 장면에서 탐크루즈(오픈 유어 아이즈보다 리메이크가 더 낫더라)가 옥상에서 뛰어내리는 장면은 파이트클럽과 마찬가지로 현실의 고통을 직면하자는 것이지만 그 태도는 굉장히 담담하다. 뭐랄까, '열정으로 뚫고 나가자'라기 보다는 감내하고 거쳐내야할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파이트클럽이 나를 조금 붕 뜨게 했던 것들에 대한 고민, 뭐 비슷하게 예를 들자면 여행이 주는 마취효과 비슷한 것이 언젠가는 약발이 떨어지는데, 그 후폭풍을 감당하는 것은 물론이고 어떻게 하면 다시 붕 뜰 수 있을까를 고민했던 것에 대해서 바닐라 스카이는 부처처럼 받아치는 꼴이 되고 말았다. (걍 원래 그렇고 그런거다, 살아라!) 황석영의 바리데기는 그런면에서 조금 상통하는 것 같다. 탐크루즈가 환생하는데 그 결과가 애처롭게도 바리데기 주인공으로 연결되어도 뭐 말은 될 것 같다.
시간이 지나고 고무줄을 잡아당겼다 놓은 것처럼 다시 돌아왔지만, 그래서 하나도 성장하지 못한것 같아서 안타깝다만, 어쨌거나 이제는 에드워드 노튼처럼 광기있는 열정을 믿기는 힘든 것 같다. 그 대신, 커다란 지도를 그려내고 탐험의 종착지까지 산재한 정글을 거쳐낼 용기와 열정을 기대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