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까지 3박 4일간의 그룹사 연수를 다녀왔다. '대기업'의 경험이 인생 처음인 나로써는 출발 전까지 어떤 윤곽도 그릴 수 없는 일정이었다.
사실 기대감이 없었다. 제 발로 이직해 놓고선, 여전히 거대한 무엇이든지에 대한 냉소와 무시가 나의 태도에 깔려있기도 했다. 이러한 출발과 달리, 짧은 일정은 여러모로 되돌아보게 되는 좋은 시간이었다.
아직은 어린 내 나이에서 알 수 있는 많은 것들을, 지금까지는 관찰을 통해 알게 되었다. 글과 영상, 전해듣는 이야기를 통해서 말이다. 하지만 데이터가 언제나 그러하듯 그 풍부한 모든 것과 섬세한 질감을 미디어로 담아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동안 아주 단편적이고 의도적인 몇 가지 조각난 사실들에 의지해서 나만의 '생각섬'이 만들어졌는지 모르겠다. 그것은 힘을 발휘하는 큰 자산이기도, 또 실제와 연결되지 못하는 '섬'이기도 하다.
연수일정은 알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것들을 경험하고 온 시간이었다. '다양하다'는 단어로 포괄할 수 없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나를 생각하게 만들고, 불편하게 하고,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변화를 독촉하기도 한다.
이직한 회사에서의 하루하루 또한 마찬가지다. 늘상 사진으로 보던 해변가를, 바닷가에 나서서 모래를 만져보고, 소금바람 냄새를 맡고, 모공으로 파고드는 온도를 느끼는 기분이다.
아무튼 나의 가정 바깥에선 내 의지에 대한 반작용으로 갖가지 선이 만들어지고 있다. 희미한 선 중 어느 것이 진하게 또 굵게 성장할지 아무것도 예측할 수가 없다.
그리고 연수를 마치고 돌아온 집에서는 새로운 점이 성장하고 있다. 아들로 증명된 재주는 이제 14주를 지나고 있다. 사실 처음 딸인지 아들인지 알 수 없었을 땐, 어느 쪽에도 선호가 없었다. 다만 아들이라면, 내가 아들로 자란만큼 '좀 더 잘 알고 키울수도' 있겠다 하는 정도였다. 내가 조금 더 아는만큼, 아들의 성장을 도울땐 더 과감할 수 있고, 딸이 커가는 과정에서는 내가 잘 모르는만큼 매우 조심스럽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아빠인 나는 잘 준비된 어른인가? 하는 질문과는 아주 멀리 동떨어진 인식이다. 그저 아기가 나오기 전까지 나 역시 지금보다 좀 더 나은 사람으로 커둬야 할 것 같고, 더 여유있는 마음을 가져야할텐데 하는 조급함이 생긴다.
미성숙한 아빠답게, 재주의 의지와 관계없이 내 바람만 적어보자면 이런 것들이다. 자연스럽게 공놀이를 잘하면 좋겠다. 난 운동선수도 아니고 운동장에서 뛰어본건 군대 이후로 잘 기억도 안나지만, 어린 시절 해질때까지 공을 차고 던지는 기분과 경험은 특별한 것이다. 작은 경기장에서의 운동에는 아주 많은 것이 담겨있다.
그리고 정녕 해보고 싶은 것이 있다면, 나와 엄마의 선택과 판단이 아닌 스스로의 경험과 성공과 실패로 결정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건 정말 부모의 역할이라 생각한다. 역할이라기보다 인내심에 가깝다.
끝으로(오늘 기준) 엄마를 닮아 공감하는 마음이 크고 따뜻하면 좋겠다. 이건 정말 날 닮지 말고 엄마를 많이 닮으면 좋겠다. 연애와 결혼생활을 하며, 내 dna에는 없는 풍부한 감정을 아내에게서 보고 읽을 때가 많다.
내게 이직과 임신은 가장 큰 변화다. 주변을 둘러보면 서른 둘 즈음에 변화를 선택하는/변화가 찾아오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네트웍을 확장해보니 서른 둘에만 변화하는 것이 아니다. 마흔에도, 쉰에도 얼마든지 변화하고 성장한다. 그러니 그저 난 주어진 서른 둘의 변화를 성실히 만들어나가야겠다는 다짐만 한번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