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틈에서

from 삶의 축 2008. 7. 18. 01:36
다들 달려간다..
 
우리가 속한 곳은, 우리의 이름은 엘리트이니까

만들어진 세계로 다들 도전을 한다.

분명히 여기는 다른세계다. 일단 대한민국 안에서도 모두들 그렇게 살지는 않는다.

상대성이론처럼

멀리서 바라보는 비행기는 아주 천천히 날아간다지만

눈앞의 비행기는 굉음만 남기고 사라져버린다.

이렇게 바라보고 있으니 초조해질수밖에..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초조해하면서 쫓아가거나 뒤쳐지지 않으려고 달린다.

진로(대부분이 시험)를 결정하지 못했기 때문에 느리다고 여긴다.

이야기하면서 너무 안타까웠다. 스스로 잘 판단하는 훌륭한 사람들이 고민을 하고 있어서,

나역시도 내가 이렇게 서있는것이 옳은건가? 라는 물음은 계속 하기 마련이다..

시험을 보겠다고 하는 것이 나쁘다는걸 말하려는게 아니다. 국가고시는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네 삶을 거기에 기준을 둘 필요는 없다.


왜냐면 우리는 아직 "아무것도 모른다".

아는척하지만 사실 우리는 강물에 떠가는 낙엽같은 이야기 몇가닥 주워들은 것 뿐이다.


1학년때 왜 중고등학교에서 자기맞춤형 인생을 설계하는 교육을 하지 않느냐고 속으로 주장한적이 있었다.

나도 잊고 있었는데, 얼마전에 일기를 보고 스스로 너무 부끄러웠다.

어떤 인생에서 기준을 어디에 두는가는 가장 중요한 문제(일 수 있)다.

나는 어찌어찌 세워져있는 '좋아보이는 기준'을 좇다가 결국 남는건 후회뿐이라는 걸 몇번 겪었는데.

물론 거창한 일들은 아니었다. 공부하는 방법이나, 학교 숙제나, 개인적인 작업이나, 그냥저냥 소소한 것도 있고 그보다 조금 중요한 일들도 있었다.

이게 어떻게 인생의 문제까지 대입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자세히 증명할수는 없겠지만

어린나이이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산 인생, 2~3개의 도막 정도는 구분할 수 있다.

그렇게 불어난 덩어리를 돌이켜보자면, 역시 맞는말이었다.

그때그때의 선택이 옳았냐 옳지 않았냐는 결국 스스로에게 얼마나 진심이었나와 같은 문제다.

결국 나에게 집중하는 것이 중요한것같다.

방향이 다르니까, 1000명이면 1000개의 방향이 있는거다. 속도가 중요한게 아니다.

낙관적이라고? 추상적이라고? 절대 그렇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선구자가 되자고 하는 이야기는 더더욱 아니다. 그냥 행복해지자는 거다.

나(우리)는 결국 [무엇]을 하게 될지 모른다.

많은 이들이 큰틀을 잡고 가야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부분 직업군으로서의 틀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여기서 큰 틀이란, 어떤 삶의 유형 혹은 성격이 되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걸 어떻게 결정하냐는 것은 모르겠다.

단지 내가 나에게 확실히 주장할 수 있는것은, 지금 여기에서 하고 있는 혹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 뿐이다.

어쨌거나 여기에 내가 하고 있는 뼈대는 있는 것이고, 같은 뼈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 속에 있더라고 살은 붙이기 마련이니까.

내가 하는 일을 아까워하지 말자. 그것이 결국 가장 현명한 판단이었다고 말할 날이 올테니까

그러니까 용기를 가지자, 나는 나를 속이지 않으려면 아파도 용감해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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